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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민주노동조합총연맹 Ruina Confederation of Democratic Trade Unions|Конфедерация демократических профсоюзов Руины | |||||||||||
정식 명칭 | Ruina Confederation of Democratic Trade Unions Конфедерация демократических профсоюзов Руины 루이나 민주노동조합총연맹 | ||||||||||
약칭 | RCDTU, 민주노총 | ||||||||||
국가 | |||||||||||
창설일 | 1990년 11월 11일 | ||||||||||
전신 | 전국노동조합협의회 | ||||||||||
본부 | 벨포르 특별시 코트니가 8번지 | ||||||||||
성격 | 전국 단위 노동조합 총연합 | ||||||||||
지도부 | 위원장 마리사 K. 오웬스 (2024년~) 사무총장 이언 P. 코스티건 (2024년~) | ||||||||||
가맹 조직 | 28개 산별 노동조합 | ||||||||||
조합원 |
| ||||||||||
법적 지위 | 1990~1998년 불법단체 1998년 합법화 | ||||||||||
기관지 | 《전선》 (주간, 1991년~) | ||||||||||
관련 정당 | 노동당 (2000년 창당 지원) | ||||||||||
관련 조직 | 루이나 노동총동맹 (경쟁 총연맹) | ||||||||||
1. 개요 [편집]
루이나 민주노동조합총연맹(Ruina Confederation of Democratic Trade Unions, RCDTU)은 1990년 창설된 루이나의 전국 단위 노동조합 총연합이다. 통칭 민주노총이라 불리며, 28개 가맹 조합에 약 210만 명의 조합원을 두어 루이나 노동총동맹(RLF)과 함께 양대 노총을 이룬다.
1978년 군정기에 RLF 지도부가 정부 임명제로 전환되고 파업권이 정지되자, 이에 반발한 활동가들이 사업장 단위의 비합법 노조를 조직한 것이 출발점이다. 이들은 1985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결성했고, 1.10 민주화 선언 이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1990년 11월 11일 총연맹을 창설했다. 정부는 창설 직후 이를 불법단체로 규정했으며, 합법적 지위를 얻은 것은 8년 뒤인 1998년이었다.
산별 조직화, 직접행동,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노선으로 삼아 RLF의 합법주의·교섭 중심주의와 대비되어 왔다. 창립선언문은 1916년 빈덴브루크 철도 총파업 당시 RLF가 총파업을 거부한 사건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며 루이나 철도노동자연맹(RRWF)의 산업별 노조 정신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1978년 군정기에 RLF 지도부가 정부 임명제로 전환되고 파업권이 정지되자, 이에 반발한 활동가들이 사업장 단위의 비합법 노조를 조직한 것이 출발점이다. 이들은 1985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결성했고, 1.10 민주화 선언 이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1990년 11월 11일 총연맹을 창설했다. 정부는 창설 직후 이를 불법단체로 규정했으며, 합법적 지위를 얻은 것은 8년 뒤인 1998년이었다.
산별 조직화, 직접행동,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노선으로 삼아 RLF의 합법주의·교섭 중심주의와 대비되어 왔다. 창립선언문은 1916년 빈덴브루크 철도 총파업 당시 RLF가 총파업을 거부한 사건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며 루이나 철도노동자연맹(RRWF)의 산업별 노조 정신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2. 역사 [편집]
2.1. 전사 [편집]
1978년 군정 수립과 함께 파업은 사실상 금지되었고, 루이나 노동총동맹은 임금 억제 정책의 집행 창구가 되었다. 1980년 헌정이 회복된 뒤에도 총동맹의 인적 구조는 그대로 남아, 사업장의 요구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쌓였다. 이 시기 노동자들은 기존 조합과 별개로 소모임과 야학을 조직했고, 여기서 배출된 활동가들이 1980년대 초반 대형 사업장에 잇따라 독립 노조를 세웠다.
1983년 하버스턴 조선소, 1984년 벨포르 지하철에서 기존 조합을 대체하는 노조가 결성되었으나 모두 인정받지 못했고 주동자는 해고되었다. 1985년 9월, 이렇게 만들어진 41개 사업장 노조가 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결성했다. 협의회는 법외 단체였고 사무실은 여러 차례 압수수색을 당했지만, 해고자 지원과 파업 연대의 구심 역할을 했다.
1983년 하버스턴 조선소, 1984년 벨포르 지하철에서 기존 조합을 대체하는 노조가 결성되었으나 모두 인정받지 못했고 주동자는 해고되었다. 1985년 9월, 이렇게 만들어진 41개 사업장 노조가 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결성했다. 협의회는 법외 단체였고 사무실은 여러 차례 압수수색을 당했지만, 해고자 지원과 파업 연대의 구심 역할을 했다.
2.2. 창설 [편집]
1.10 민주화 선언 이후 노동법이 개정되어 복수노조 설립과 산별 조직화가 허용되자, 협의회와 신설 산별 조합들은 총연맹 결성에 착수했다. 1990년 11월 11일 벨포르 코트니가 노동회관에서 열린 창립대회에는 가맹 예정 조합 19개의 대의원 1,240명이 참석했다. 이 가운데 12개 조합, 조합원 약 90만 명이 RLF에서 이탈해 온 조직이었다. 초대 위원장으로는 하버스턴 조선소 해고자 출신 리언 T. 오시어가 선출되었다.
정부는 창립대회 이튿날 총연맹을 "법이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단체"로 규정하고 설립신고를 반려했다. 이후 8년간 민주노총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었으며, 위원장 세 명이 잇따라 구속되었다. 다만 가맹 조합 자체는 합법이었기 때문에, 총연맹 명의의 활동만 처벌 대상이 되는 기묘한 상태가 이어졌다.
정부는 창립대회 이튿날 총연맹을 "법이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단체"로 규정하고 설립신고를 반려했다. 이후 8년간 민주노총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었으며, 위원장 세 명이 잇따라 구속되었다. 다만 가맹 조합 자체는 합법이었기 때문에, 총연맹 명의의 활동만 처벌 대상이 되는 기묘한 상태가 이어졌다.
2.3. 합법화 [편집]
1997년 12월 의회가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노동법 개정안을 기습 처리하자 민주노총은 창설 이래 최대 규모의 총파업에 돌입했다. 금속·운수·공공 부문이 동시에 멈춰 3주간 이어진 이 파업으로 개정안은 재심의에 부쳐졌고, 그 과정에서 총연맹의 합법화가 합의되었다. 1998년 4월 설립신고가 수리되어 민주노총은 창설 8년 만에 합법 조직이 되었다. 이듬해에는 창설 당시부터 불법이었던 루이나 교직원노동조합도 합법화되었다.
2.4. 정치세력화 [편집]
2.5. 2015년 이후 [편집]
2015년 웨스트로 경기장 폭발 참사 이후 민주노총은 유족 농성을 공개 지지하고 벨포르 도심 집회에 조직적으로 참여했다. 당시 리처드 콜턴 정부의 여론공작이 드러나면서 집회 규모는 급격히 커졌고, 2016년 3월 총연맹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정치총파업에 돌입했다. 같은 해 선거에서 콜턴 정권이 패배하면서 이 파업은 민주노총이 정치적 영향력을 가장 크게 발휘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다만 정치파업을 금지한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지도부 11명이 기소되었고, 재판은 2019년까지 이어졌다.
2020년대에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조직화와 하청 노동자 문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2024년 취임한 마리사 K. 오웬스는 전국돌봄노동조합 출신의 첫 여성 위원장이다.
2020년대에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조직화와 하청 노동자 문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2024년 취임한 마리사 K. 오웬스는 전국돌봄노동조합 출신의 첫 여성 위원장이다.
3. 관련 인물 [편집]
인물 | 재임 | 비고 |
리언 T. 오시어 | 1990~1994년 | 초대 위원장, 두 차례 구속 |
버나뎃 A. 콜 | 1995~1998년 | 합법화 협상 주도 |
그레고리 M. 하트 | 1999~2004년 | 노동당 창당 지원 |
토머스 J. 노리스 | 2014~2018년 | 2016년 정치총파업 |
마리사 K. 오웬스 | 2024년~ | 현직, 첫 여성 위원장 |
4. 가맹 조직 [편집]
조합 | 창설 | 분야 | 조합원 |
1959년 | 항공 | 4만 | |
1987년 | 의료 | 16만 | |
1988년 | 자동차·조선·기계 | 42만 | |
1988년 | 방송·신문 | 3만 | |
1989년 | 교육 | 19만 | |
1990년 | 화물·버스·택시 | 27만 | |
1991년 | 건설 일용 | 23만 | |
1993년 | 은행·증권·보험 | 14만 | |
1998년 | 철도·지하철·발전 | 31만 | |
2005년 | 이민 노동 | 2만 | |
2007년 | 요양·보육 | 11만 | |
2012년 | 조선 하청 | 6만 |
4.1. 민주금속노동조합 [편집]
1988년 자동차·조선 대공장 노조들이 결성한 총연맹 최대 조합. 창설 당시 루이나 노동총동맹 산하 금속노동조합과 사업장이 겹쳐 오랜 조직 경쟁을 벌였고, 같은 공장에 두 조합이 병존하는 사례가 지금도 남아 있다. 총연맹 총파업의 실질적 동력이자, 대공장 정규직 중심이라는 비판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4.2. 루이나 교직원노동조합 [편집]
1989년 창설 당시 교원의 단결권이 인정되지 않아 발기인 전원이 파면되었고, 이후 10년간 법외 조직으로 활동했다. 1999년 합법화되었으나 정치활동 금지 조항은 유지되었다. 교육 정책을 둘러싸고 루이나 교원연맹과 노선이 정면으로 갈린다.
4.3. 공공부문노동조합연맹 [편집]
1998년 철도·지하철·발전 부문 조합이 결성한 조직으로, 공공요금과 민영화 정책을 둘러싸고 정부와 직접 충돌해 왔다. 필수유지업무 규정 탓에 합법 파업의 여지가 좁아, 총연맹 내에서 노동관계법 개정 요구가 가장 강한 부문이다.
4.4. 이주노동조합 [편집]
2005년 창설된 이민 노동자 조합. 조합원 다수가 체류 자격과 무관하게 가입할 수 있도록 규약을 설계했고, 이 때문에 설립 초기 정부가 설립신고를 반려해 소송으로 다투었다. 총연맹은 이 조합의 가맹을 승인하면서, 1915년 RRWF가 이민 노동자를 조합에서 배제해 이듬해 파업에서 대가를 치른 일을 창립 이래의 교훈으로 언급했다.
4.5. 조선하청노동조합 [편집]
2012년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결성했다. 원청과의 교섭권을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10년 넘게 이어 오고 있으며, 2022년 하버스턴 조선소 도크 점거 농성으로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5. 조직 [편집]
5.1. 대의원대회 [편집]
연 1회 열리는 최고 의결기구. 가맹 조합이 조합원 3,000명당 1명의 대의원을 파견한다. RLF와 달리 총파업 결의권을 총연맹이 직접 행사할 수 있다.
5.2. 중앙집행위원회 [편집]
위원장, 사무총장, 부위원장 4명, 가맹 조합 대표 24명으로 구성된다. 위원장과 사무총장은 조합원 직선으로 선출되며, 이는 대의원 간선제인 RLF와 대비되는 특징이다.
5.3. 지역본부 [편집]
전국 16개 광역 단위에 설치되어 지역 연대파업과 미조직 노동자 상담을 담당한다. 지역본부는 총연맹 직할 조직으로, 가맹 조합 지부의 연합체 성격인 RLF 지역평의회와 구조가 다르다.
5.4. 부속 기구 [편집]
- 노동안전보건연구소: 1996년 설립. 산업재해 실태 조사와 역학 자료 수집을 담당한다.
-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1991년 설립. 창설 이후 발생한 해고자의 생계 지원과 소송을 맡는다.
- 미조직전략조직화본부: 2009년 설립. 특수고용·플랫폼 부문 조직화를 전담한다.
6. 노선과 강령 [편집]
- 산별 조직: 기업별 노조를 산업별 노조로 전환하는 것을 창설 이래의 과제로 삼는다. 2025년 기준 가맹 조합원의 78%가 산별 체제로 전환했다.
- 직접행동: 파업, 점거, 대중집회를 정당한 수단으로 규정한다. 절차적 합법성을 우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RLF와 근본적으로 갈린다.
- 정치세력화: 노동자 정당의 육성을 조직 목표에 명시하고 있다. 2013년 이후 특정 정당 배타적 지지는 하지 않는다.
-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비정규·하청·이주·특수고용 노동자의 조직화를 총연맹 차원의 우선 과제로 둔다.
- 노동관계법 폐지: 1952년 제정된 노동관계법의 동조파업·정치파업 금지 조항 폐지를 창설 이래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다.
7. 비판 및 논란 [편집]
- 총파업의 실효성: 정치적 요구를 내건 총파업이 반복되면서, 조합원의 실제 참가율과 요구 관철률이 낮다는 지적이 있다.
- 대공장 편중: 조합원의 절반 가까이가 대기업 정규직이어서, 비정규직 조직화를 내세우면서도 실제 자원 배분은 대공장 중심이라는 비판이 내부에서도 제기된다.
- 정파 갈등: 창설 이래 노선을 달리하는 정파들이 선거와 방침 결정을 두고 대립해 왔으며, 2013년 정치 방침 전환 당시에는 조합 탈퇴로 이어졌다.
- 집회 과정의 충돌: 도심 집회에서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이 반복되면서 여론의 비판을 받아 왔다.
8. 기타 [편집]
- 총연맹은 루이나 노동자의 날 공식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고, 메이데이 집회를 별도로 개최한다. 이는 1916년 파업 이후 RRWF 잔존 세력이 노동자의 날을 "피 값으로 산 휴일"이라며 거부한 전통을 계승한다는 명분에서다.
- 매년 창립기념일마다 지도부가 빈덴브루크의 몽고메리 K. 번즈 묘소를 참배한다. RLF 산하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시 RRWF의 계승을 표방하고 있어, 두 총연맹이 같은 유산을 두고 경쟁하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 기관지 《전선》은 1991년 창간되었으며, 합법화 이전에는 발행인이 여러 차례 기소되었다.
- 총연맹의 상징은 붉은 바탕에 부러지지 않은 차륜 문양으로, RRWF의 흰 차륜 도상을 변형한 것이다.